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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

[스크랩] 조각목의 영적의미

by 샬롬♡예루살렘 2014. 10. 31.

성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무가 바로 아카시아나무 곧 조각목이다. 싯딤나무라고도 말하는데 흔히 메마르고 황량한 광야에서 자라는 것으로 햇빛으로 고통당하는 나무이며, 모래로 상처받은 나무이며, 바람으로 인해 서로 찔리는 광야에 버려진 가치없는 나무이다. 가시가 돋고 단단하고 질긴 것이 특징이다. 조각목은 성막의 거의 모든 기구에 쓰였다. 전체가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과 놋으로 만들어진 것 이외에는 모두 조각목에 금을 입혀서 사용했다. 조각목은 잘 생기거나 반듯하게 자라는 것도 아니다. 성경에는 상수리나무, 백향목, 잣나무 등 귀히 쓰임받는 나무들이 많았다. 이러한 나무들은 반듯하게 자라는 나무들이었으므로 성막에 사용될 때에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지않는 나무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독 조각목을 성소에 사용하도록 명령하셨다. 아카시아나무는 아주 질긴 나무다. 또한 바람에 잘 견디고 동물들이나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시가 나 있는 나무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긴 성격으로 인하여 이 나무를 성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아카시아 나무는 그대로는 사용될 수 없었다. 성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어렵고 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카시아 나무는 그렇게 큰 나무는 아니다. 이 나무는 잘 다듬고나면 널빤지 한장이 나올까 말까 했다. 성소 벽을 만드는 널빤지는 한규빗 반(약70cm)이고 길이가 10규빗(약4.5m)이었다. 귀족적으로 잘 자라는 백향목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조각목으로 성물을 만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아카시아 나무가 성물이 되기위한 첫번째 과정은 택함받고 잘리는 것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그런데 이 아카시아 나무는 뿌리가 잘 퍼져 나가서 그 주위에 있는 나무들까지 생명의 위협을 주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서도 잘 자라지만 일단 퍼져나가면 그 주위의 생태계가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생명력이 뛰어난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또한 조각목의 뿌리가 다른 식물들의 뿌리까지 감으며 영향을 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카시아 나무의 죄성은 무척 크다. 이 죄성은 다른 나무의 뿌리까지 죽여버릴 정도로 악하고 뿌리깊다. 이러한 죄성은 무섭게 퍼진다. 이 나무의 뿌리는 잘려야 한다. 우리의 죄성은 땅으로부터 단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죄성의 뿌리가 땅으로부터 잘린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성물로 사용될 수 없다.

 

그 다음에 아카시아 나무는 껍질이 벗겨져야 한다. 모든 성물이나 제사때 쓰이는 제물은 껍질이 있는대로 그냥 사용되지 않는다. 우선 껍질이 벗겨져야 한다. 그 과정은 아카시아 나무로서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땅으로부터 잘려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아픔도 크지만 자신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더 큰 고통이다. 당신의 겉껍질, 벗겨져야 할 껍질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입고살던 자신의 현주소, 자신을 나타내는 이름, 명예, 소속, 학벌 등등 모두 벗겨져야 한다. 세상적 가치, 세상적 사고와 판단, 세상적 욕심 등 모두가 벗겨져야 할 껍질들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너무 더럽고, 패역하며, 세상것으로 잔뜩 물들어 있는 껍질은 한 꺼플씩 차례로 벗겨져야 한다.

 

그 다음으로 아카시아 나무는 말려져야 한다. 교회 성물들의 나무를 보면 잘 말려져 있다. 말려진 나무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교회의 강대상에 올리지 못할 것이다. 껍질을 말리는 것이 겉을 말리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물을 말린다는 것은 아주 보이지 않는 속까지 잘 말리는 작업이다. 속과 겉이 모두 말려지고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다. 여리고 성에도 외성과 내성이 있었다. 외성을 무너뜨린다고 좋아할 것이 못된다. 외성보다 서너배나 더 두꺼운 내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성을 무너뜨리는 작업이 아카시아의 두꺼운 나무 속의 물까지 모두 말리는 작업인 것이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인 또는 목회자가 되었지만 속에는 은밀하게 남아있는 자존심, 자기 의, 교만이 있다. 이것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보시고 계시며 이런 나무는 성물로 사용하시지 않는다. 이런 말리는 과정의 훈련을 다 받지못한 존재가 성물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계가 혼란해지고 서로에게 아픔과 괴로움을 주게되는 것이다. 가시가 있는 그대로, 뿌리가 뽑히지않고, 껍질이 벗겨지지않은 상태로 우리들은 주님 앞에 나아가려고 한다. 속이 다 말려지지 않은 상태로, 속사람이 온전하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주님께 사용되려고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러한 모습으로는 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다. 성물로 사용될 수가 없다.

 

아카시아 나무가 성물이 되기위해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작업은 울퉁불퉁한 모습이 반듯한 모습으로 도기위해 대패질을 받는 것이다. 곧게 다듬어져야 한다. 대패질은 불필요한 부분들을 다 밀어내는 작업이다. 이것은 껍질을 벗겨내는 것보다도 더 큰 아픔과 인내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패질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은 아주 작은 조각목, 널빤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가시와 잎으로 무성했던 아카시아는 결국 작은 널빤지 한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과정을 마친 조각목에게는 금으로 입혀지는 마지막 과정이 남아있다. 정금으로 덧입혀질 때에야 성소와 지성소에서 주님의 성물로 사용된다. 이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이다. 정금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한다. 몸은 조각목이지만 정금으로 입혀질 때에 우리는 귀중한 존재, 귀중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역자로서 사용될 수 잇는 것이다. 이미 곧게 자라난 백향목을 사용하시지 않고 아카시아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깊은 뜻이 당신에게 전해질 수 잇기를 바란다. 주님은 이렇게 다듬어서 사용하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이다. 하찮게 버려진 가시나무, 아카시아 나무를 귀하고 존귀한 성물로 만드시는 솜씨를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주님께서 다루어 주신다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아멘-

 

성령의 은사로 신령한 집 세우기  -윤남옥 목사 저-

 

 

출처 : 우리소망 행복한 교회/국제순회 선교회 성령사역
글쓴이 : 박바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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