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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절주절

by 샬롬♡예루살렘 2014. 12. 29.

 

본인은 군에 재대를 하면서 처가집 잘 만난 탓으로 바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예수쟁이를 보면 까닭없이 피팍을 함서 누군가 전도를 하면 웃기는소리  하지 말라고 비웃음의 조소를 던진 본인이 골수 예수쟁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랏다. 

88년 2월19일(내 기억은)날은 명절을 앞둔 날이었다.차 안에는 제사음식을 가득 실린 채 세상유희를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달렷다.

들뜬 마음에 엑설러드를 힘차게 밝던 중 뭔가 쿵하는 것이었다.

어.'이거 무슨 소리지? 횡단보도에 길을 건너던 소녀를 박은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것이다.

지금의 교통법규와 종합보험이 없던 시절이라 인사사고의 구십프로 이상 구금이 되던 시절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이 되면서 자유를 실감하고 땅을 치면서 후회를 한들 뒤늦은 것이었다.

자유의 몸이 될려면 우선 합의가 문제였기에 서둘러 합의를 볼려고 마누라를 보냈지만 마눌은 너무 순진한 여자라 이런덴 소질이 없었다.

당시 상무로 근무하던 분은 청와대 경호원으로 근무하다가 박정희 시해 문제로 옷을 벗은 분이었는데 그 분이 합의를 본다고 나섯는데 내일 내일로 자꾸만 미뤄지는 초조함에 이 곳 자유를 잃은 생활에 적응이 너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합의가 늦어지면서 교도소로 이송이 되는데 겁이 나서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불안함을 감추질 못했다.

사회 생활에서 가장 잘 낫다고 교만을 떨던 그 기백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고 호랑이 우리에 던져 진 한 마리의 토끼에 불과한 자신을 보니 그 괴로움과 초라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한 방에 열명 정도가 같이 생활을 했는데 누가 날 보고 때리지도 않는데도 어찌 그리도 불안한지 하루종일 화장실 문앞에 양반자세로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이 벹는 말만 듣는 것이었다.

수감이 된지 한 달이 지날 즈음에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상무란 사람은 합의를 본다는 명목으로 가져간 돈을 갖고 도망을 하였다는 소식도 같이 들었던 것이다.

허지만 사회와 달리 사건이 끝났다고 즉시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재판을 받아야 하는 나라의 법규에 얽메여 속이 탈 정도였다.

암튼 합의도 하였고 방 안에 수용자들도 합의가 됏으니 재판 때는 석방이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한 시간이 사회의 한 달 보다 긴 것같았다.

드디어 재판의 날이 왓다.세벽같이 일어나서 뜻도 모르는 반야심경인지 뭔지 쉴세 없이 시부렸다.

결과는 완전 예측을 뒤엎었다.

어찌 이럴 수가 ~~실형 10개월을 받았다.일전에 들은 말로는 피해자의 부모가 상당히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영향을 받았는지 암튼 이해가 안 되고 그 괴로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과로운 인생길 하루가 천 년이나 간 것처럼 시간은 안 가고 말도 잃고 웃음을 잃은지도 꽤나 오래된 것같다. 이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심히 고통이라 하루가 지옥이었다.

일단은 항소를 하고 2심 재판을 기다렷다.

여러 날이 가면서 이 방에서는 가장 고참이 되었지만 앞으로 살 용기는 커녕 당장에 숨 쉬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말로서 표현치 못할 괴로움의 연속이었다.방에 동료들이 혹 웃음이 들리면 속으로 저것들은 정신이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으니 나중에 생각하니 이게 우울증이 아니었나 짐작이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살아갈 용기도 보람도 없었는데 문뜩 떠오르는 기가 막힌 생각이 들엇다,아 맞다.자살이다.죽으면 이런 고통도 없을 건데 진작에 생각지 못한 것이 아쉬웟다.

오늘 밤 난 자살을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동료들이 잠이 들면 화장실 안에서 목을 멜 거라고 계획을 잡고 이들이 잠이 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잠들기를 기다린 내가 먼저 잠이 들었나 보다.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으나 형체를 분명히 알 수 없는 아주 높다랗게 키가 큰  한 분이 나에게 아래를 보면서 무언가를 주기에 나는 양 손을 하늘을 향해 뻗쳐 그걸 받았다.받아서 이게 뭔가 하고 눈 앞에 가져와 보니 성경책이었다.아.. 이거 성경책이네 하고 앞을 보니 나에게 성경책을 준 분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신기하게도 어제까지의 그 토록 괴롭던 나의 마음은 간 곳이 없었고 그 반대로 이젠 까닭 없이 즐겁고 마냥 행복하더란 것이다.자신도 모르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하나님을 믿어야겟다고.그러면서 속으로 기도를 드렸다.하나님요 나 좀 살려주이소.그러고 보니 이게 나의 첫 기도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암튼 이유가 없는 즐거움이 솟았다.

방 안에 동료 중 서열 3위가 감방장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묻기에 좋은 일이 있지.나 있자나 간 밤에 하나님을 만났데이 하니.어''.정말요? 함서 복 받았네요 하더라.

이 날 오전에 교도관이 나를 부르면서 특별면회가 왔다는 전갈이 왔다.머..특별면회?나에게 특별면회가 올 사람도 없을 뿐더러 특별면회를 할 수 있는 중요 인물도 아니었기에 설마 하면서 내 귀를 의심을 할 정도였다.다시 확인을 했더니 맞다라고 하셧다.

일반 면회와 특별면회의 장소는 달랐다.교도관의 인도로 면회 장소에 갖는데 낮 선 두 분의 신사가 날 맞이하면서 고생이 많죠?이젠 걱정 마십시요 하시면서 저는 코오롱 그룹에서 나왔으며 그룹의 차원에서 이 선생님을 도울려는 결정이 났고 옆에 이 분은 상서재단에서 오셧는데 역시 이 선생님을 도우겠다고 오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함서 아울러 어찌 이런 일이 있나 하면서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코오롱 그룹에선 평생 사원으로 특채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고 사택도 준비 돼 있고 판사에게 부탁을 해 났으니 조만간 나올 거니 몸조심 하시고 상서재단에서는 자재 분들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하도록 재반 배려를 할 것이며 학비나 생활비는 전혀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서재단이란 곳은 대구 경북에서 세금을 가장 만이 되는 학원 재벌과 다수의 기업도 있는 곳인데 나의 애들이 졸업을 하면 그 기업에 특채를 하겠다는 약속도 하더랍니다.이렇게 면회는 끝나고...

방 안에 오니 하나님을 만났다더니 아주 높은 분이 오셧나 보네요 함서 방 안이 난리였다.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특별면회는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 만의 특혜인데 내가 마치 유명인사라도 된 듯..

오후에 또 특별면회가 왔단다.이런..우찌 이럴 수가.

애가 다니던 학교에 교장선생님과 교육청의 장학사와 막내의 담임선생이라고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수감이 되던 해에 막내가 입학을 하였기에 난 막내의 담임을 알 턱이 없었는데 이쁜 여선생님이셧다. 하여튼 도움이 될 만한 모든 환경을 주겠다는 말씀과 함께 헤어질려는 즈음에

 작금의 이런 일이 어떻게 이뤄줬는지 이 분들의 대화에서 알 수가 있었다.

사연인 즉 막내의 잦은 지각과 결근에 담임선생님은 막내와의 면담을 통해 나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담임은 교장에게 보고를 하고 기도를 하였는데 어떤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건 나의 현실을 신문에 기사화를 하라는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렷다는 것이다.그래서 담임은 교장과 함께 기자를 불러 나의 현실을 밝히면서 제보를 하엿던 것이다.허지만 본인이 교통사고를 낸 싯점은 2월 달이고 지금은 이미 몇 달이 지난 6월 달이라.. 더구나  교통사고가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닌데도 신문에 기사화 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문제였는데 암튼 신문 사회면에 크다란 지면을 차지하면서 기사로 나왔는데 그 기사의 내용 또한 실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과장된 표현으로 포장이 되었단 사실을 나중에 출소하고 알았던 것이다.

결국 신문에 난 기사를 보았던 독지가들의 후원에서 비룻된 있을 수 없었던 현실이 이뤄진 것이다.이런 기적은 만화에나 나올 법한 현실적 일로써  하나님이 아니면 세상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금의 생각도 변함이 없습니다.이렇게 한 영혼을 살릴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누구도 꿈도 못 꾸는 방법으로 선택을 하시는 겁니다.또한 하나님은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주시는데 당시의 모금이 4억이 넘는 돈이었데 지금으로 본다면 0하나 더 붙여도 될 거액이었습니다.

면회가 끝날 즈음에 담임선생님이 영진이 아버님 예수님을 믿어세요. 라고 부탁을 하시면서 성경책을 넣어두었으니 읽어보라는 주문과 아울러 면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 왔다.

방으로 오는데 사동 전체가 난리였다. 하루의 1회만 면회가 허용되었기에 두 번이나 그것도 특별이라니 교도소 생긴 이레 이런 일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

암튼 이렇게 하여 감옥소에서 스타가 되고 또한 한 없는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이었다.본인은 방에서 가장 높은 감방장이었기에

방에서 성경책을 보고 기도의 방법은 몰랐지만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요 나 좀 살려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엿더니 이런 건 어떻게 하는 건지 알켜주는 동료들이 만이 있었다.당시엔 그런 곳에서 교회 당기니 하는 것을 숨겻었다.왜냐면 하나님이 있다면 왜 감옥에 왔나 란 비아냥과 함께 치아라 임마 함서 폭력이 되던 시절이었다.기드온이란 곳에서 성경책을 무상으로 주는데 재소자들은 성경책이 재수 없다면서 다 찣어서 벽지로 사용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감방장이 성경을 보고 기도를 드리니 나도 실은 밖에서 교인이었다 라고 고백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만았다.또한 당시에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범으로 수감된  운동권 학생인 경북대 법학과 박 아무게도 한 방에 있었는데 그 학생이 기독교 서적도 일부러 밖에 누나에게 부탁을 하여 넣어주었던 터라 기초적 지식을 상당히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그 때 읽은 책의 내용 중에  당시 성경을 기록할 즈음엔 종이가 없었기에 파피루스란 식물의 잎에 기록을 한 것이라고 지금도 기억을 하는 것입니다.시간이 마치 화살 같이 어찌 시간이 그렇게도 잘 가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첨에 성경을 읽을 땐 요한복음부터 읽는게 도움이 된다고 알켜주었고.. 그러면서 방안에는 마치 적은 교회가 옮겨온 것 처럼..이런 사연과 함께 본인은 그토록 싫어 했던 골수 예수쟁이가 되면서 사연을 올려보는 겁니다.이 후 수 많은 기적을 체험을 하면서..특히나 자랑을 하고픈 체험은 ~예수님을 가장 질 믿는다는 분에게 보증을 부탁했는데 일언지하의 거절로  죽기로 작정을 하고 밤 11시 경에 저의 차안에서 베지밀 한 병과 함께 약을 먹었는데 억수로 괴롭더군요.너무 괴로워서 차 밖으로 나와서 땅을 핡키고 하였는데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택시 기사가 절 발견을 하고 인근의   새강병원 이란 곳에 응급실에 눕혀졌는데 당직의사가 위세척을 하더랍니다.콧구멍으로 고무호수를 넣더만 위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 같던데 이물질 제거는 하나도 안 되는 것 같았고 그 때의 저의 정신은 오락가락이었죠.위세척이 끝나고 의사가 간호원에게 하는 말이 어렴풋이 들렸는데 저 환자는 안 되겠다 하더랍니다.그 말이 끝나고 바로 정신을 잃었는데 멀쩡한 정신으로 눈을 뜨니 아침이었고 저의 배 위엔 당시 친하게 지내던 목사님이 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셧던 것이었습니다.목사님의 땀이 나의 몸과 얼굴에 뚝뚝 흘럿던 것이었죠.아이고 ~목사님 무거워요 좀 내려오세요.하엿더니 드뎌 하나님이 살려 주셧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셧습니다.

의사가 저 환자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의식을 잃었는데. 이 후 전 황량한 벌판의 위를 달아다니는 것이었죠.나의 정체가 누군지 모릅니다.다만 까닭없는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세상같으면 왜 괴롭나 하는 이유가 있고 괴로움을 해결 할 방법도 찿겠지만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왜 괴로운지 모르고 오로지 괴로움 밖에 없었습니다.이유가 없다는 겁니다.오직 괴로움의 연속일 뿐 더 이상의 생각과 더 이상의 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한 마디로 생각하는 뇌가 없어진 거죠.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 자체가 천국이란 느낌이 확 들더군요 .그 곳에 일 초의  고통이 세상의 천 년 고통과 비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었나 하고 천국은 그 반대로 까닭 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처럼 본인은 하나님의 강권적 사랑에 힘 입어 자식이란 영광의 칭호를 얻어 오늘에 이르렀지만 지나친 의협심 이라던가 또한 분별 없는 지혜로 인하여 마냥 순탄지 만은 않았던 나의 삶이었음을 고백 합니다.수 차례 넘어지고..그러면 비로소  울고 불고 엎드리면 단 번에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남용했던 자신이 아니었나 회개를 하면서도 되풀이 하는 나란 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그 넘의 세월호인가 뭔가 하는 바람에 많은 액수의 부도를 냈는데 돌이켜 보면 부도가 날 수 밖에 없는 본인의 삶이었기에 지금 생각 하면 당연한 거라 여겨집니다.부도 이 후 죽음을 생각하면서 무의식으로 카페의 셔핑을 하던 중에 우연히 이 곳에 목사님의 칼럼을 읽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배우고 듣던 말이 아니라서 정신을 차리고 나름의 검증을 하면서 밤을 세워 몇 날을 읽었습니다.읽는 중에 은헤가 오고 참으로 깨달음을 많이 얻었지만 지금의 나의 현실로써는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을 흘렀습니다.진작에 ~진작에 이런 목사님의 배움을 받았다면 오늘의 현실은 없었을 텐데 라는 통한의 눈물이었죠.

어차피 죽음을 목전에 둔 나는  틀렷지만 그래도 이렇게 귀한 목사님을 알았다는 거와 아직도 이런 썩지 않은 목사님이 존재는 하구나 란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고맙다는 글을 올린 것이 지금 내가 살아 있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습니다.

저의; 글을 보신 목사님이 통화를 하자는 제의에 그래 이래도 죽을 거고 저래도 죽을 건데 까짓 껏 통화 쯤이야 하면서 통화를 한 것이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영성학교를 오라는 것이었죠..차비가 없어 못 갑니다.차비 지금 보낼 테니 당장 오시요.넵 알겟슴다 가겟슴다.무거운 걸음을 함서 갓었죠.상담을 함니다.기도코칭을 하심다.기도함니다.이틀의 기도 중에 금감원에서 상담 좀 하자는 저나가 왓슴다.목사님 가야겠슴다.당장 움직일려면 경비며 끼니도 없을 건데 함서 또 몇 십을 줍니다.이 넘은 염치 없이 받슴다.

십 억이 넘은 부채라 도저히 회복 불가능은 고사하고 감옥에 가야 할 처지였지만  두 달 정도에 다 갚게 되는 기적의 연속임다.

이렇게 영성학교 세 번의 기도코칭으로 지금은 극히 껌 값에 불과한 이천 만도 안 되는 홀가분한 현실로 다시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슴다.

 

사랑하는 이 곳의 님들!

하나님은 절대로 존재하시며 우리 모두를 지극히도 사랑하십니다.허지만 우리 또한 지극정성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신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주실 겁니다.다만 우리 내면의 깊이를 통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옳은 내면을 갖도록 하셔야겟죠? 그렬러면 이 곳 영성학교를 통해 내면의 온전을 갗출 수 있는 노력과 열성이 요구되리라 생각합니다.감나무 아래서 기도만 드린다고 감이 입 안에 떨어지는 일은 없겠죠?우리 모두의 정성의 열성이 필요치가 않겟나 생각하면서 모두가 영성학교를 통하여 우리가 바라는 세상적 바램과 하늘의 소망을 다 이루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휴우 ~글 솜씨가 워낙 없으니 글 쓴다고 십껍했네ㅋㅋ

 

 

  

 

 

 

출처 :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살다보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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