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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메모노트 ♡

[스크랩] 휴거 & 재림, 시기와 대상 총정리

by 샬롬♡예루살렘 2015. 3. 11.

교회의 휴거

 

요한 계시록이 시작되면 일곱 교회가 등장하고, 계시록 4장 1절에서는 바로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이 열리며 올라오라는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 번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계 4:1)

 

하늘은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만 열리며 계시록에서 두 번만 있습니다. 4장 1절과 19장 11절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님께서 공중에서 한 번, 지상으로 한 번 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4장 2절에는 요한이 즉시로 영 안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하늘의 왕좌와 거기 앉으신 분을 보게 됩니다. 성경을 그대로 보면 요한은 순식간에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은 휴거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놀라운 장면입니다.

 

-하늘이 열림.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올라오라 부름.

-몸이 변화됨.

-하늘로 올라가 이후로 주님과 함께함.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한 신비와 일치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고전 15:51~54)

 

이처럼 '성취되리라' 한 것이 성취되는 장면이 계시록 4장의 도입부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도의 휴거를 뜻하는 것입니다.

 

 

 

휴거의 실재성과 그 소망

 

먼저 휴거가 정말 있는지에 대해 잠깐 살펴봅니다. '휴거'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들림을 받는다'는 표현이 있고, 성경에서 사람이 들려 올라간 사례는 예수님 이외에도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간 에녹(창 5:21~24), 히오리 바람을 타고 올라간 엘리야도 있습니다(왕하 2:11). 또 사도행전의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사막에서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뒤 갑자기 사라지는데, 하나님의 손에 채어 가서 아소도 지방에 나타나게 됩니다(행 8:39). 바울도 셋째 하늘에 채여 올라갔었습니다(고후 12:2, 4).

 

랩처(Rapture), 즉 휴거는 라틴어 rapere가 어원인데, 이 말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서 그리스어(헬라어) 하르파즈(harpaz)를 번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영어로 caught up(채여 올라가다)입니다.

성도들의 휴거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의 기록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와 똑같은 비중으로 효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홍해가 갈라진 것이나 똑같이 주님에게는 너무나 간단한 일입니다.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렘 32:27)

 

또한 바울이 말한 신비는 예수님 승천 이후 교회를 이룬 성도들의 오랜 소망이었습니다. 모든 역사 속의 성도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들이 아니고 그들 모두는 이런 날을 기다리며 우리처럼 살다가 먼저 간 지체였습니다. 다만 우리 시대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때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느 때로 계획하셨든지 우리는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성도들입니다.

1993년 휴거를 주장한 이들의 해프닝 때문에 한국 교회는 휴거와 종말론 자체를 금기시해왔습니다. 마치 휴거를 말하기만 해도 이단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마귀의 영리함에 모두가 속은 것입니다. 이제 모든 교회는 이 땅에서의 축복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휴거가 분명히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성도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뿐이지요.

 

성도들은 휴거가 되기 때문에 이런 환난의 내용들을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거나 공포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휴거되지 못하고 남을 사람들에게 무서운 환난이 임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복되고 소망어린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휴거의 소망을 가졌습니까?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정말 날짜를 세며 간절히 기다리십니까? 이런 소망은 지치고 힘든 삶에서의 해방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실도피적 휴거를 꿈꾸는 것은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분을 바라보면서, 신랑이신 그분과 함께할 날을 꿈꿔야 합니다. 그때는 정말 즐겁고 놀라운 일들을 우리가 만나게 될 것이며 몸도 변화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날 때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실 주님을 생각하면, 그날의 일들이 정말 기대됩니다. 우리는 동명이인도 있겠지만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와 함께 나팔소리를 분명히 알아들을 것입니다. 주어진 날들을 성실히 살되 주님을 바라보며 두려움 없이 나아갑시다.

 

우리가 성경의 기적들을 대할 때 우리의 일반적인 눈으로만 보려고 하면 이해하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와 다른 차원에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대기권만 벗어나도 숨조차 쉴 수 없는 존재지요. 하나님은 모든 물질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무에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적은 그분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2차원 운동만 하는 지렁이 같은 동물은 입체적인 시각이나 개념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입체적 공간에서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다람쥐가 신기합니다. 또 바로 사라져 버리기도 하지요. 또 먹이를 들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렁이에게는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차원은 지렁이와 다람쥐간의 간격보다 훨씬 더 큽니다.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 같은 것도 그분께는 너무나 손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적들보다 더 신기한 말씀의 정확함을 보았습니다. 도무지 뀌어 맞추려고 해도 맞을 수 없는 고대의 수천 년에 걸쳐 기록된 말씀들이 정확히 짝이 있고 그대로 이루어지며 성경 안에서 논리적으로 뒤틀림이 없다는 기적적인 일을 보았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올리시고, 또 셋째 하늘에 다다를 수 있는 몸으로 홀연히 변화시키실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흥분되지 않습니까. 그때는 땅의 모든 일에서 우리가 놓임을 받을 것입니다.

 

휴거는 우선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옵니다. 장차 있을 일들을 알려주는 소망의 내용입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될지, 또 살아서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보게 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3~18)

 

 

 

휴거의 시기 문제

 

7년 대환난이 닥친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70이레를 통해서도 마지막 남은 한 이레, 즉 7년을 두고 현재 공백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백기가 있는 이유는 아무도 마지막 날을 점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모든 이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이자 계획입니다.

휴거는 환난 전이나 후냐, 중간이냐, 여러 차례냐, 혹은 아예 없느냐 등 학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면 전 세계적 환난은 휴거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는 환난 전이며 한 번 뿐입니다. 또한 재림은 공중재림(휴거)과 지상재림으로 각각 7년 대환난의 시작과 끝 부분에 일어납니다.

대환난에 이스라엘이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들과 화평의 조약을 맺는 세력이 환난의 한 중간에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 성경의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교회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신 메시아를 죽인 자들이며 아직 하나님께로 되돌아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반면에 교회, 즉 성도는 '한 처녀'로 성도 전체가 '한 몸'입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정혼한 상태로 이미 주님과 혼인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정혼만 한 상태임에도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한 처녀로 주님과 정혼한 상태이기 때문에 주님과 이미 한 몸입니다. 자신의 몸에 진노를 쏟아 붓는 주님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의 지옥과 같은 대환난에는 성도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환난 후 휴거나 환난 중간 휴거는 맞지 않습니다.

 

대환난 후에 있을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휴거로 보고 환난 후 휴거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지상 재림은 성도를 데리러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올라가 7년간의 혼인잔치를 마친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리라. (골 3:4)

 

휴거는 다음과 같이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4~16)

 

휴거는 지상 재림이 아니라 공중 재림입니다.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환난 후 휴거에 관한 논리는, 이 중대한 마지막의 역사에서 참 성도와 가짜를 어떻게 구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난을 견디고 믿음을 보여야 비로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인데, 이는 복음을 무효화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인데 어떻게 구원받은 성도가 육체적 고난을 견뎌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주님을 배반했던 이스라엘은 그런 과정을 거쳐 믿음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거부하다가 뒤늦게 깨달아 환난에 들어간 자들도 목숨을 내놓기까지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그때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을 지니고는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건져냄을 받아 안전히 거하는 존재입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는지 보여 주나니 이분은 곧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delivered) 예수님이시니라. (살전 1:10)

 

분명히 장차 다가올 일을 말씀하면서도 과거형으로 '건져 내신'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은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애매하게 되어 있어서 이미 건져 내신 것이 아니라 진노가 있을 때, 즉 진노에 들어가서 건져 주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NIV도 현재형 삼인칭 동사 rescues(구조하다)를 씁니다. 이런 단어 하나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 (롬 5: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 (살전 5:9)

 

이 말씀들 역시 우리가 대환난의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진노(wrath)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이 마지막에 받을 고난의 날인 '주의 날'에 해당합니다.

 

특정한 말씀들을 잘못 해석해 환난 후 휴거가 주장되기도 하는데, 다음 말씀도 환난 통과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I also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계 3:10)

 

이 부분의 '시험의 기간을 면한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시험에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거기서 견딜 수 있게, 혹은 보호를 해준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keep from~는 '~로부터 지켜준다'는 의미의 숙어가 아니라 '~하지 못하게 하다, ~에 들어가지 않게 하다'라는 의미로, 아주 기초적인 숙어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어가되 지켜준다는 것은 자기들의 교리에 맞춘, 완전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성도는 면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지옥 같은 곳에 넣어 함께 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이 임할 때도 하나님은 의인들이 적으니 연대책임으로 함께 죽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피신시킨 후에 멸망시키십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됐지만 그녀도 구원을 받은 후에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이 멸망의 땅을 떠나기 전까지 아무것도 못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가 롯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 대해서도 너를 받아들였은즉 네가 말하는 이 도시를 멸하지 아니하리니 너는 속히 거기(소알 땅)로 도피하라. 네가 거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소알이라 하였더라. (창 19:21~22)

 

너무나 명백한 말씀이고 하나님의 방식이 상식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라고 해서 다른 계산법을 적용하시지는 않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휴거와 7년 환난 시기의 인류 구분

 

휴거와 7년 환난 시기에 있을 일들을 맞이할 대상은 다음 도표에서 보듯이 세 가지 유형의 인간밖에는 없습니다. 교회, 즉 성도는 7년 환난과 상관없이 휴거되며, 유대인과 불신자는 환난에 들어가는데,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누구도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구분

교회

유대인

불신자

자격

구원받은 예수님의 지체로

그분과 정혼한 한 처녀

메시아를 거부해

구원받지 못한 하나님의 아내

믿지 않는 모든 자,

멸망할 자들

구성원

믿기만 하면 구분 없음

유대인

이방인

휴거

대환난 전 휴거됨

환난 통과

구원

이미 구원받음

환난 중 순교의 각오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해야 함

 

 

휴거가 없이 7년 환난을 모두 통과한 후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7년이 끝난 후에 휴거가 있게 되면 교회와 유대인과 이방인 환난 성도가 모두 지상에서 사라집니다. 불신자들은 물론 심판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면 천년왕국에 살아서 들어갈 사람이 없습니다. 일단 변화되고 휴거되면 더 이상 아기를 낳지 않는 영화로운 몸이 되기 때문에 천년왕국에 관한 다음 말씀들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아이가 백 세에 죽으리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 (사 65:20)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사 11:8)

 

이처럼 천년왕국에는 육체를 지닌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휴거가 미리 있지 않고 7년 후에 다같이 올라간다면 이런 성경의 예언들을 충족시킬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휴거와 재림을 혼동하면...

 

대개 휴거의 여부와 회수, 시기 등의 혼란을 겪는 것은 유대인과 성도의 구분을 잘 못하는 등의 이유도 있지만, 휴거와 재림 등을 이르는 문맥을 뒤섞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휴거와 재림은 명백히 다릅니다. 한 예로 휴거(공중재림)는 성도들이 지구상에서 구출되어 사라지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지상재림은 불신자들이 심판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사건입니다. 이때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구출되는 것이므로 완전히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눅 17:26)

 

노아의 날들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데려가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자를 지구상에서 제거하시고 노아와 그 가족들을 땅에 남기셨습니다. 노아의 날들과 같이 마지막 재림 때에도 불신자들은 땅에서 제거됩니다. 그리고 믿고 견딘 자들은 남아서 천년왕국에 들어가며 낙원이 회복된 땅에서 계속 삶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때가 '노아의 날들'과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휴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분명히 우리 성도들이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주님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위의 두 문맥이 같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휴거가 대환난 후에 한 번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모두가 올라가면 천년왕국에는 대체 누가 들어가는지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휴거는 구원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빌 1:6)

 

반면에 지상재림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며 '야곱(이스라엘)의 고난의 때'입니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욜 2:31)

 

 

 

휴거와 재림의 차이 비교

 

이처럼 휴거와 재림을 구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환난 후 휴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휴거와 재림이 단 일회적인 사건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환난 중간 휴거 등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들이 맞는다면 휴거나 재림은 모두 같은 특성을 지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두 가지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휴거

재림

'그리스도의 날'이라 부름(빌 1:6)

'주의 날'이라 부름(욜 2:31 등)

성도가 사라짐

불신자가 사라짐

소망 중에 기다림(딛 2:13)

모두가 애곡함(마 24:30)

공중으로 오심(요 14:3, 살전 4:17)

땅으로 오심(슥 14:4, 욥 19:25)

비밀리에 이루어짐(고전 15:51)

공개적으로 이루어짐(계 1:7, 마 24:27)

주님이 직접 오심(살전 4:16)

천사들을 먼저 보내 이스라엘을 모으심(마 24:31)

아무 징조도 없음.

많은 징조와 표적이 있음(눅 21:11, 21:25~27 등)

신약 교회 성도들의 부활.

환난 성도와 구약 성도의 부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됨(빌 3:20~21 등)

몸이 변화된다는 말씀이 없음.

복된 소망임(딛 2:13, 살전 4:17~18)

성도에게는 두려움, 불신자에게는 경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지심(살전 1:10)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부으심(계 19:15)

구원받은 자들을 모으심(살전 4:16~17)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모으심(마 13:41~42)

7년 환난의 신호탄

7년 환난의 마무리

 

그러므로 휴거와 재림, 즉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은 완전히 다른 사건입니다. 휴거, 즉 공중재림이 없이 단 한 번의 지상재림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분명히 드러난 공중재림에 대한 가르침이 미미하기 때문에 무시하곤 하지만, 공중재림의 내용이 비교적 적고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게 표현된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와 정혼한 한 처녀인 신부, 즉 성도들과 우리 주님과의 비밀스러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과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 성도들과 하늘에서 7년 동안 혼인잔치를 하시는데, 그동안 우리들도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휴거의 시기와 대상, 재림의 시기와 대상을 잘 알면 앞으로의 일이 계획표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떤 대상인지, 내 가족과 이웃이 어떤 상태인지 그림이 그려지고, 해야 할 일이나 마음의 상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안전-소망-대비-전도-선포 등의 순서로 자신을 돌아본다면 불필요하게 종말론에 시간을 쏟느라 죽어가는 이들을 건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소망 중에 주님의 오심을 사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J. 버논 매기, 제임스 낙스, 팀 라헤이 등 저자의 견해와 성경지킴이(keepbible.com) 강해를 참고로 정리함.

 

참고자료

http://woogy68.blog.me/140189618553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shinyeong1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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