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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는 메세지 ♡

[스크랩] WCC 배도에 대해 외치라!

by 샬롬♡예루살렘 2013. 10. 28.

WCC 배도에 대해 외치라!                                             

복사 http://blog.naver.com/esedae/90183581683

                                                                            

 

 

사도행전 4:1-22                                               방월석 목사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가다가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주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모습을 베드로와 요한이 주목하여 보자, 저가 무엇을 얻을까 하여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행 3:6,7) 그가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 기적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들자 베드로는 저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 날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자가 남자의 수만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행 4:4)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놀라운 이적과 회심의 사건 이후에 찾아온 환난과 핍박에 대한 기록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핍니다.

 

1. 진리가 선포될 때 핍박하는 자들이 일어났습니다(2,3).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오천 명이나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오히려 말씀을 전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이튿날까지 가두고 위협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땐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믿음을 갖는 자들과 말씀을 싫어하여 핍박하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히브리서 4장 12,13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했습니다.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여 우리의 죄악을 폭로해버리기 때문에 이 말씀이 선포될 때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나타나는 겁니다. 온유 겸손한 자들은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어찌할꼬”(행 2:37)하며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완악하고 교만한 자들은 저들의 죄악을 드러내는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 이 말씀을 부정하고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려 합니다. 이런 자들의 미움을 받아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신 것이고, 오늘 본문 등장하는 베드로와 요한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제사장들에게 붙들려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요 3:19)했습니다. 또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 3:19,20)하셨습니다.

 

이번 30일부터 부산에서 개최되는 WCC 총회를 막기 위해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며,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WCC의 이단성에 대한 자료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WCC 총회를 강행하려는 세력들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이런 글들을 차단하고 글을 게시한 사람들에게 소송을 걸겠다며 위협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입과 눈과 귀를 가려서 결국 배도의 모임인 WCC를 강행하겠다는 겁니다.

 

종교통합을 추구하는 WCC(세계교회협의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배도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면, 이제라도 회개하고 WCC 부산 총회를 철회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사실을 알려주어도 들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핍박하고 이 사역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보인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먼저, 저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전한 말씀을 싫어했습니다(2).

 

빛이 비추매 어둠이 빛을 싫어했던 것처럼(요 3:19), 베드로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싫어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바로 얼마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음모를 꾸민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시기하여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을 받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런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예수가 부활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고, 그의 이름이 앉은뱅이를 낫게 하였다는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가 달갑게 들릴 수 없는 겁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하고, 죄인들은 의인들을 미워합니다. 왜 입니까? 빛을 통해 어둠의 일들이 드러나고, 의인들을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위선적인 죄인인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저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두고, 다시는 이 도를 전하지 말라고 위협했습니다(3, 21).

 

베드로와 요한이 행한 표적과 저들이 증거한 말씀을 반박할 수 없게 되자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두고는 “다시는 이 도를 전하지 말라”(18절)고 위협했습니다. 진리를 부정할 수 없을 때, 어둠에 속한 자들이 보이는 두 번째 반응이 바로 방해와 핍박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가두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WCC 총회를 강행하는 자들도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글들을 차단하여 WCC의 이단성에 대해 알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 제사장들은 또 죄가 없는 베드로와 요한을 더 이상 가두어둘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저들을 위협하여 풀어주었습니다(21).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 그 다음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협박입니다.

 

블로그를 통해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인 일루미나티와 WCC의 정체를 밝히는 사역을 하다 보니 간혹 이런 글들을 보고 협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비판했다고 소속사를 통해 소송을 하겠다는 협박하는 팬들도 있고, 자기가 하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이단 연구소에 가서 방월석 목사가 이단이라고 고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엔 WCC에 관한 비판의 글들을 올리다 보니,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교회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전하는 자들은 이러한 방해와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멍멍아 짖어라 기차는 간다”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3. 이제는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의 위협 앞에서도 베드로가 전했던 말씀들을 살펴봅니다.

 

먼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12절)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했던 가야바의 법정에서 사도들을 가운데 세워놓고는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 묻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9-12절)

 

가야바의 법정은 베드로가 얼마 전에 자기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성령충만 받은 베드로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12절)라고 담대히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불교에도, 유교에도 이슬람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WCC 배도의 무리들을 향해 우리가 외쳐야 할 메시지도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고 외쳤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복음을 전하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자, 더 이상 고소할 빌미를 찾지 못한 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저들을 불러 “앞으로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합니다(18).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

 

‘하나님 앞에서’ 다시 말해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위해 일해야 할 하나님의 종들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니까 할 말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살아가는 겁니다.

 

지난 8월 13일 장자교단을 자부하는 모 교단의 증경 총회장이 WCC에 대한 입장을 묻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WCC 신학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WCC 총회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애매한 발언입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사람 눈치를 살피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겁니다. “WCC 신학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WCC 총회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은 “불교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절에 가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과 똑같은 겁니다. 이처럼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살펴서 옳다고 판단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다고 해야 합니다. 사람 눈치 보고 또 협박이 두려워서 해야 할 말을 못한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일꾼이길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 라고 우리도 베드로처럼 담대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4. 결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흉계를 꾸민 자들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이었고, 오늘 본문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붙잡아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한 자들도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자들이 타락하여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사명을 저버리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러했고, 오늘날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목사 신학자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이들을 향해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12절)는 말씀을 분명히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성도들의 외침을 막으려고 방해하며 위협하는 저들을 향해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라고 분명히 외쳐야 합니다.

 

 

출처 : WCC 부산총회 반대운동 연대
글쓴이 : PraisetheLor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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