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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문의 답변 ♡

하나님과 친밀할수록 기도응답을 쉽게 받는 것일까요? - 답변글

by 샬롬♡예루살렘 2015. 9. 26.

 

 

 

Re: 하나님과 친밀할수록 기도응답을 쉽게 받는 것일까요? - 답변글


2012.10.15. 16:29 
 

 

 

 

답글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부족한 글이 될 것 같은데,
같은(?) 일반 성도의 입장에서 작은 일부분이나마 나누고 싶어 몇자 적습니다.. ^^ 

 

기도 응답을 받는 원리에 대한 제 부분적인 의견은, 


한두가지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요,

그러나 그것을 쓰기 전에 먼저 나누고 싶은 부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절을 나눠 보고 싶어서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히나 지금 이 세대,

주님의 오심이 임박한 지금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요한계시록 14: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누가복음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구절들이 의미하는바, 나의 의지를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내려놓는

겸손한 마음의 자세와 이것의 실질적인 실천이, 우리가 무엇을 기도하기 이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포괄적이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이루어지는 그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 응답이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이루어짐으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실만한 일이기에

우리에게 더불어 기쁨이 되는 것이고, 응답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이란 시각 또한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보구요. 


제가 예전에 우연히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인물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을 때,

그것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기까지, 꼭 그 약속의(축복의) 말씀의

정반대  레벨의 시험(유혹이 아닌 테스트의 의미)을 통과하도록 하셨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들면, 요셉에게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으로서

비전을 주셨지만, 그가 그 하나님의 비전, 즉 세상의 참으로 높은 자가 되기까지

실제로는 정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삶의 곤고함을 오랫동안 맛보아야만 하는

테스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반석이라는 의미로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예수님께 받고 그 반석 위에,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신다는 그 약속의(축복의) 말씀을 받은 사도 베드로의 경우도,

사실상 믿음의 반석은 커녕, 믿음의 반석 정반대인  예수그리스도를 세번 부인하게 되는

스스로의 연약함에 봉착하여 자신의 믿음없음의 실체를 밑바닥까지 알게 되는

경험을 먼저 거치게 되었으며,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많을거라는 하나님의 그 말씀과는 정반대로,

(사라로부터 얻은) 한명 있는 독자마저 하나님께 생명을 바치도록 하는 테스트를

거친 후에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 부르심의 아이덴티디가 성립되어

그 때부터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을 얻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 경우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도가 참 성도가 될 때,

즉, 아브람아브라함이 되고, 야곱이스라엘이 되고, 시몬베드로가 되고,

사울바울이 될 때 비로서 말씀하신 목사님과 같이 유기적이면서 선명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으며, 이런 성장이 이루어 지기까지에는 성도가 통과해야 할,

불과 같은 테스트와,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하는 댓가를 치룰 의지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구요.

 


말씀하신 목사님께서 상황 상황, 간구 간구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 할 수 있었다는

그 의미는, 그 만큼 그 목사님께서 자신의 의지를 항상

하나님의 뜻 아래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있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상태일 때는, 하나님께서 그런 때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멸시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데요.

 

 

이렇게 내 의지와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크고 우선인 그 사람의 자아 상태에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없으므로,

이것이 하나님의 이미 이루어주신 응답을 지연케하는 요인이 됨은 맞는 것 같습니다.

 


내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 아래에 둔 사람은(= 주님을 정말 나의 주인과 왕으로 모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하기 원하는 양에 내가 순종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내가 말씀 읽기 원하시는 그 분량을 내가 순종하여 실천하고 있는지

체크하지 않을 수 없고, 신앙생활 삶 자체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

내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는지에 먼저 촛점을 맞추게 되며,

이 때 비로서 나란 존재의 실체를 깨닫을 수 있는 발걸음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나란 존재의 실체를 깨닫는다는 의미는, 내가 어떤 죄인이고, 죄가 도대체 무엇이고,

내가 죄인이되 얼마나, 어디까지 죄인이냐는 그 깊은 깨달음의 시작,

곧, 말씀의 깊은데로 나아가는 경험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구요.

 

죄와의 싸움은 우리가 주님 계신 곳에 갈 때까지 싸우는 쉬임 없는 싸움이고,

싸우면 싸울 수록 내 자신의 악함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는 싸움이지만,

이 과정에서 성도가 얻는 아주 중요한 것은 바로, 끊임없이 반복 되어지는 진실한 회개로서

내가 점점 낮아지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의 은혜를 받는 체험의 횟수가

그 만큼 정비례하여 늘어남으로 주님과의 사귐이 깊어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로서 이 때 정말 기도를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은, 성도가, 성도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먼저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지금 하기 원하시는 기도가 무언지 먼저 살피고

구하여 기도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를 하게 되면,

응답의 여부가 내 주 관심이 아니라(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이기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의심 자체가 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고,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주관하시어 역사하실 수 있는

강력한 중보기도를 할 수 있게 됨으로서,

 

 

내 기도의 행위 자체로서도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시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보구요...

말 그대로 신앙생활에 있어,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무엇이든 생각하고

생활하는 습관이 자리 잡히고, 주님과의 사귐이 깊어지고,

영적으로 조금이나마 성숙한 시각을 갖게 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응답을 포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원(circle) 안에 있느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원(circle)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느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뜻 안}에 거하고 있느냐의 의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 안에 거한다는 것은, 신앙 생활의 기본 필수 요소는

내가 기본적으로 당연히 실천하고 있는 상태임과 동시에

그 분량에 있어서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분량을 내가 순종하여 채우고 실천하는

그 상태를 말합니다.  더불어 주님께서 요구하는 어떤 것도, 아멘 주님, 하고 순종하는

그 상태이지 않나 싶구요.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항상 머리를 숙이고 받아들여 순종하려는 그 마음 자세로서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우선 순위로 여겨 기도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행함과,

더불어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시는 고난의 잔을,

아멘, 주 예수님 하고 받아들이는 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 안은 삶을 살며

기도할 때 비로서

기도의 응답의 여부를 초월한,

주님께 영광이 되는 임재의 역사하심이

한 성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주님께서 한 영혼을 통해 일하시고 영광받으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https://versaday.com/Months/02/0203.aspx>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로마서 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