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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 (여러분 내외면에서 자신 스스로를 학대하고 비판하면 하나님께서 연민하여 아파하십니다.)

by 샬롬♡예루살렘 2016. 1. 30.




할렐루야.

 

아래 글은, 제가 다른 기독교 카페에서 어떤 성도님의 문의 글에 답글로 올린 글 내용을

 

그대로 옮겨 온 것입니다.

 

(아래 파란색 글 내용이 제 답글 내용이었고 원문의글은 올리지 못했으니 읽는 분들을 이점

참고하세요.)

 

 

 

아래 글을 나누기 전에 제 짧은 간증을 하나 나누고 싶은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저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이 되면 제 자신을 내면에서

 

파괴하고 학대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내면을 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주님을 강하게 체험하고 실제적으로 만난 경험을 한 후, 어느 때인가,

 

여지없이 제가 내면적으로 제 자신을 파괴하고 학대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가 제 자신을 파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성령님께서 그것으로, 제가 내면적으로 파괴되고 학대받고

 

괴로움을 당하는 것으로, 내가 나를 위해 아파할 수 있는 그것보다 훨씬 더, 제가 파괴되고 학대받는

 

그 사실로 인해 아파하고 계심을 제가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ㅠ,,ㅠ

 

 

 

제가 제 자신을 정신적, 내면적으로 몰아세우고 학대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정죄하거나 잘못됐다고

 

저를 지적하는 시선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에 의해 파괴되고 학대받는 그 고통을 내가 견딜 수 없구나..  네가 그렇게

무너지고 아픔을 당하는 것이 나를 너무나 아프게 한다.."

 

 

라는 사랑의 의미로, 나의 아픔을 자신이 더 아파하고 계심을 제가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크리스찬들의 부족한 삶의 언행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느끼거나 알게 되는 것이

 

힘든 것을, 주님을 믿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불신자분들이나 초신자분들 앞에서

 

이것을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예수님을 믿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진정으로 회복되고

 

하나님의 참으로 좋으신 사랑을 받는 것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고 나 자신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 것 같고요..

 

 

 

간증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과 경험을 허락해 주신, 참으로 선하고 존귀하신 나의 주

 

성삼위 좋으신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 올려드리며,

 

 

혹이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예전의 저처럼 자신을 내면에서 혹은 외적으로도 

 

학대하고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마음으로 그런 여러분의 아픔을,

 

여러분 자신보다 더, 함께 아파하고 계시고 함께 눈물 흘리고 계심을 기억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 주님의 귀한 보배요 신부, 주님께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신 형제님과

함께 하신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옵나이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형제님의 안에서 함께 하신

주님을 높여 드립니다.  형제님의 마지막까지 주님의 높으신 정의와 기쁨으로 형제님의 인생의

여정을 채워주실, 주님의 형제님과의 동행을 감사 찬양 올려드리오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몸의 모든 물과 피를 흘려주어 구원하여 주신,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글쓰기를 좋아하시고 흥미있어 하신다니 주님께서 그런 달란트와 좋아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그 부분을 주님께서 사용하셔서 영적인 세계의 실체를 글로 쓰시고

주님께서 실제하심을 나타내는 글을 쓰신다면 참 좋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

 

 

 

형제님의 글을 보니, <저같이 졸렬하고 치사한 놈이 어떻게 이런 걸 쓸까하고, 부끄러워서

글자를 옮기는데 죽을 뻔 했습니다> 라는 표현을 주님께서 마음 아파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제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방에서 요를 깔고 누워 있다가, 문득 제가 깔고 누워 있는 패드에 그려진 곰돌이 프린트를

보고 귀여워서 미소를 짓고 한동안 바라 본 적이 있었어요.

 

 

 

침구에 프린트 된 곰돌이 그림이 참 귀엽더라구요.  귀여워서 한동안 그 그림에 빠져 바라보다가

순간 그 곰돌이 그림 위로 수 많은 보플이 점박이 처럼 형성된 것이 의식이 되었어요.

 

 

곰돌이 그림이 귀여워서 그것에 취해서 볼 때는 그 위에 형성된 수많은 보플의 징그러움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보플의 존재 자체도 까맣게 몰랐는데, 순간 의식해서 함께 보니 

곰돌이 그림 위로 만들어진 천의 보플이 흉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순간 제게 이런 마음이 드는거예요.  너는 보플 때문에 그 곰돌이가 이제는

귀엽지 않은거니?  라는 질문이 제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저는 대답하기를, '그래도 곰돌이는 귀여운데^^  보플이야 손으로 떼어내면 되는데...'

 

 

그러면서 주님께서 제게 순간의 깨달음을 주셨는데요.  제가 그 당시 어떤 죄의식에 항상

젖어 있었거든요.  나의 부족함, 나의 죄악들, 나의 모자람...  그래서 그런 죄의식과

자책과 나를 필요 이상으로 모자르고 낮게 보고 자학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 곰돌이 그림으로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너가 곰돌이 그림이 귀여워서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고, 곰돌이 그림 위로 징그럽고 못생긴 

수많은 점박이 보플들과 곰돌이 그림을 동일시 여기지 않고 곰돌이를 곰돌이 모습만으로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 하는 것 처럼, 주님께서 제 위로 형성된 부족함 모자람 등을 저와

동일하게 합체시켜서 그렇게 바라보시지 않으며, 제 모습 그대로 지극히 사랑스러워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형제님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절대 졸렬하고? 치사한? 놈??? 이 아닙니다..
---> (위 문장은, 형제님이라고 지칭한 분이 원질문글을 올렸을 때, 자신 스스로를 졸렬하고

치사한 놈이라고 묘사하여 것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니 읽는 분들을 참고하세요.)

 

 

형제님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부드럽고 귀하고 착하고 천사같고 훌륭한, 사랑 그 자체임을

알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형제님의 앞날에 주님의 귀한 인도하심과 형통케 하심과 보호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또한

간구드리며, 형제님을 통하여 주위의 모든 자가 형통케 되고 빛을 계시받는 축복이 충만히

임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주님의 복의 통로로서 인침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한가지 더 나누고 싶은 것은,

 

 

예전에 저희 언니가 어떤 목사님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저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었지만 언니가 받은 말씀이라 관심을 갖고 곰곰히 말씀을 바라보다가 주님께서 

말씀을 깨닫는 마음을 주신적이 있었어요.

 

 

모든 분이 잘 아는 말씀인데요.

 

 

 

{시편 1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 때 깨닫게 된 것은, 위 말씀에서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다라고 나오는데요.  이것을 이미지로 상고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http://www.thomas-kinkade-prints.org/Gardens-prints/The-Garden-Of-Prayer?sort=rating&order=DESC>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려면 물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지요. 

물이 그만큼 나무나 식물의(또한 동물에게도) 생명 유지에 너무나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거예요. 

물이 없어 가물면 그것이 오래 지속될 경우 나무가 말라 죽어버리는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어떻게 철마다 열매를 맺고 잎사귀도 마르지 않는 잘 자라는 형통한 나무가 될까? 

바로 나무의 뿌리가 곁에 위치한 시내에까지 보이지 않게 땅속에서 뻗어있음으로 가까운

그 시내물로부터 물을 흡수할 수 있기에, 웬만한 가뭄에도 철마다 과실을 맺고 잎이 청청한

건강하고 형통한 나무가 되는 거더라구요.

 

 

날씨가 가물면 광야에 있는 나무는 물기가 금방 없어지기에 곧 말라 죽게 되지만,




시내 옆에 심겨진 나무들은 날씨가 좀 가물더라도 나무 곁에 흐르는 시냇물로 인해

 



가문 날씨에 덜 영향을 받으며 그 시내물의 공급이 곁에 심겨진 나무의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처럼,

 

 

영적으로 항상 형통하고 건강한 영혼이 될 수 있는 길은 바로, 시내곁의 나무처럼,

생명수인 말씀 곁에/가까이에 심겨진 영혼(=시편1편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영혼)이라면

가능하다는 뜻임을 새삼 깨닫게 되더라구요. ^^


 

사실 많은 분들이 아는 말씀일텐데, 저는 이 깨달음이 저 때에야 왔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밤과 낮으로 묵상하는 것은, 시내가 곁, 가까이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모습이며

그러므로 내 영혼이라는 나무가 날마다 밤낮으로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물을 항상

흡수하여 철마다 성령님의 열매를 삶에서 맺고 영혼의 잎사귀가 마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시편1편 말씀의 가르침임을 알게 되었어요.

 

 

 

더불어, 나무도 숨을 쉬잖아요.  기도라는 숨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보다 그 회수로

치면 훨씬 더 많고 사실상 잠시도 쉴 수 없는 것이므로,

 

 

내 존재 자체가 기도가 되도록 힘쓰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구요.

 

 

내 존재 자체가 기도가 되도록 힘쓴다는 것은 우선 나의 의식이 항상 깨어서 주님을 생각하고

의식함으로서 기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돼구요.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이제부터는 날마다 강건하고 영혼육의 새롭게 하심의 축복과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바라며..

 

 

할렐루야.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ESV}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for welfare and not for evil, to give you a future and a hope.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ESV}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will tell you great and hidden things that you have not known.

 

 

 

 



 



 

<이미지 출처: http://www.wtcwtn.net/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