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수 그리스도 ♡

[스크랩] 요한복음 4:35 에 기록된 넉달의 힌트와 예비됨의 원리 - 홍의봉선교사

by 샬롬♡예루살렘 2015. 5. 20.

                         요한복음 4:35 에 기록된 넉달의 힌트와 예비됨의 원리

 

A  넉달의 놀라운 힌트

 

지난 번 올린 <추수절기와 오순절 VS 나팔절>에 여러 좋은 반응이 있었는데, 특히 <김베드로 외침> 카페의 <불꽃>님이 놀라운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제 글을 읽기 하루전의 주일날 예배를 드리던 중 요한복음 4장 35절의 말씀이 들어 왔고, 순간 드는 생각이 모두 나팔절이 추수할 때라고 생각하지만 넉달 앞에 있는 오순절의 이른 추수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날 제 글을 읽게 되어 우연일까? 라고 쓴 것이었습니다. 저는 답글을 통해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썼고, 그렇지 않아도 글을 올렸던 날의 이른 아침에 자고 있었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딴 방문에 녹크소리가 나 후닥닥 깨어 일어난 저는 전에도 몇차례 그런 적이 있었음으로, 어서 속히 글을 올리라는 재촉임을 즉각 알아 챘고, 서둘러 글을 올렸노라고 답했습니다. 얼마나 각 성도의 삶속에서 자상히 운행하시며 인도하시고 서로 합력하게 하시면서 조율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님이신지요?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한복음 4: 35)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교훈이 아니요 주시는 정확한 힌트일 수 있음을 잘 아는 저로서는 이 말씀을 놓고 더 깊이 묵상하던 중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추수절기는 단 3 절기뿐으로서, 초실절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으로, 남은 추수절기는 오순절과 장막절뿐이고, 위의 말씀이 추수에 관한 내용임으로 나팔절에서 넉달전이 아니라, 추수절기인 장막절에서 넉달전을 의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며, 그러고보니 오는 장막절이 테트라드의 마지막 Blood Moon 이 뜨는 9월 28일이고, 9월 28일의 넉달전이면 5월 28일이 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월 28일은 유대인의 방식으로 지키는 오순절의 5월 23/24일과 올바르게 산출된 오순절의 5월 30/31일 사이에 놓인 날로서, <YeshuaisourLord>님이 올린 <다가오는 2015년 5월 28일 주목되는 행성 직렬 현상>의 경고와 일치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 글에 들어가 올려진 동영상들을 보면서 신빙성이 있고 충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이 일련의 전개가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다가오는 2015년 5월 28일 주목되는 행성 직렬 현상>

http://cafe.daum.net/aspire7/9zAJ/7535

 

물론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앞일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과연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증거들이 나타날 때는 일단은 가장 진실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예비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겠지 하면서 무시하고 경히 여기어 예비되지 않는 미련한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됨의 원리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도움이 되도록 여기 소개해 드리기 원합니다.

 

B  예비됨의 원리

 

1)  성전의 원리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의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흔히 공생애를 시작하기전 으례히 통과해야 했던 의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 의식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고 메시아닉 랍비에 의해 전해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에게 성막을 짓도록 모세를 통해 명하시고 그 성막을 통해 백성을 만나 주셨으며, 그후 솔로몬 시대에 성전이 세워진 이래로는 성전을 통해 백성을 인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에서 성전으로 이어져 오는 동안 하나님은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BC170 경부터 이 명을 어기고 제비를 뽑아 아무 지파나 제사장직을 수행했고, 로마의 지배하에서 제사장들은 더욱 타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시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부터 돌로 지어진 성전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게 되었고, 제사장직분제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예수님께로 그 바톤이 넘겨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지켜지지 않고 있었고 타락했음으로 하나님은 아론의 제사장직분제를 우선 정통성 있게 회복하실 필요가 있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모두 아론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아들을 주시었고, 이름을 요한으로 하도록 명하셨으며,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출생케 하였습니다. 사가랴 집안에 요한이라는 이름이 사용된 적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그렇게 명하신 것은,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마지막으로 지켜진 당시의 대제사장 이름이 요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하여 세례요한을 통해 아론의 제사장직분제를 정통성 있게 회복하신 하나님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통해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정식으로, 공식적으로 예수님께 이전되도록 의식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단강에서의 세례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성전이 거룩하게 유지되도록 요구하시는 것이며, 성전이 더럽혀질 때 결코 용납하지 않으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제1 성전과 예수님의 초림 당시 세워져 있던 제2 성전도 제사장과 백성이 타락하여 더럽혀지고,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며 돌아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몸된 성전일지라도 원수에게 내어주어 파괴되도록 허용하셨던 것이며, 그래서 그 거룩한 장소에 이슬람의 우상이 오늘날까지 버젓히 서있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성전된 예수님이 초림 때 오시어 사역을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래로는 성도들 자신이 성전이 되었는데,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은 매우 심각한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말씀에서 <그 사람을 멸하리라> 하신 것은 제1 성전과 제2 성전과 같이 원수에게 내어 주겠다는 의미로서, 환란기의 적그리스도 치하에 남기겠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은 바깥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이 육과 혼과 영으로 형성되어 있는 동일한 구조입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겠다는 성도치고 여전히 육으로 죄를 범하고 있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혼은 여전히 부정한 상태로 남아 있는 성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시기, 질투, 증오, 분냄, 탐욕, 편견, 아집, 열등의식, 우월의식, 우울증 등등 모든 감정으로 인한 부정함과 안목의 정욕 및 생각의 정욕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부정함이 이 혼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은 지성소에 해당하는 영역인데, 하나님 외에 그 어떠한 우상도 세워져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자아의 우상이 가장 허물기 어려운 우상인데, 자기가 온전히 죽어 존재하지 않는 경지까지 내려감으로써 자아의 우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사역자들에게 있어서는 목회나 사역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음으로 극히 조심하고 자신을 항상 냉철히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보혈로 매일 매일 성전을 정결케 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거룩케 하며,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풍성한 열매가 항상 채워져서 예수님의 사랑과 빛으로 가득한 성전이 되도록 할 때 하나님이 기쁘게 열납하시는 성전으로 예비되는 것입니다.

 

더럽혀졌던 성전이 성결케 복원되어 재봉헌되었던 절기가 수전절(Hanukkah)인데, 작년 수전절 중 근 2천년만에 성전시대 이래로 성전에서 사용되던 성결한 감람유가 최초로 생산되었고, 제3 성전에 사용하기 위한 비축식을 가질 때 그 감람유로 메노라에 점등식을 가졌는 바, 역사적인 기적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이 역시 성도들이 자신의 몸된 성전을 성결하게 가꾸고, 성령의 기름으로 성전의 등불을 밝히는가 하면,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 수전절로 부터 4월 4일의 유월절, 2주 연속해 지킨 제2의 유월절, 그리고 오순절로 이어지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몸된 성전이 성결하고도 빛나는 성전으로 예비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로 나아가시기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단하셨던 겟세마네는 <Oil Press>라는 의미로서, 실제로 감람유를 생산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이는 성도의 자아가 으깨지고, 갈아지고, 짜져서 순수하고도 성결한 감람유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오순절 때도 밀을 고운가루로 빻아 굽고 그 떡 두개를 하나님께 열납했는데, 고운가루로 빻아지는 것이 자아가 완전히 부서져 고운상태로 예비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2)  천국복음의 원리

 

예수님께서 초림 때 오시어 전한 복음은 천국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중에는 천국의 현상을 시범으로 보인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랬고, 물 위를 걸으신 기적도 그 좋은 예였습니다. 그러나 택한백성은 천국복음을 거부했고 배척했습니다. 교회는 천국복음을 받았으나 변질 시켰습니다. 예수 믿고 잘 되어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복을 누리다가 죽어서 천국가면 그만이다 라고 천국복음을 변질 시킨 것입니다. 그럼 천국복음은 무엇입니까?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과 연결되어, 천국에 상급을 쌓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천국복음입니다. 동방박사가 세 예물을 드린 것은 예수님이 행하실 세 임무를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선지자와 대제사장과 왕의 임무입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 오시어 선지자의 임무를 완수하시었고, 현재 천국에서 대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계시며, 다시 오실 때는 왕으로 오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이래로 오늘날까지 대제사장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하고 계십니다. 대제사장되시는 예수님은 성도들이 다 자고 있을 때에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각 성도들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내려다 보시며 중보하신다고 합니다. 성도는 제사장의 신분임으로, 당연히 천상에 계시는 대제사장을 섬기며,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대제사장을 보좌하고 그 지시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지시는 성령님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민감하게 깨어 있어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바를 깨닫고 순종하며 따라가면서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휴거자의 예표는 에녹인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자였습니다. 에녹은 오순절에 출생했고, 오순절에 하늘로 들리워졌습니다. 따라서 신부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자라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능히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동행하는 신앙생활의 대표적인 예는 빌라델비아교회로서, 적은 능력으로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이기는 자(Overcomer)인 것입니다. 늘 민감하게 깨어 있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3: 8)

 

3) 회복사역의 원리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는 회복사역으로서, 죄가 들오기전의 에덴동산으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성도는 죄가 들어오기전의 하와의 상태로 회복되어 주님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a. 이제 곧 우리는 주님과 1:1 의 관계로 만나 얼굴을 마주 할 때가 오게 됩니다. 제가 양띠이고, 성도가 양이며, 예수님도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으로, 오래전부터 대관령의 양떼목장을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는데,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 이 소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4월 하순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양들을 방목하기에는 이른 때여서 목가적인 정경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양들의 털을 깍는 날 마침 방문하게 되어 진귀한 장면을 목격 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은 자기 차례가 오자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긴 했지만, 일단 잡혀서 벌렁 뒤집혀지면 털이 다 깍이는 동안 일체 저항하지 않았는데,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기록한 이사야의 말씀이 상기되었습니다. 또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다 온순할 줄만 알았던 양들 중에도 제법 거친 녀석들이 있어서, 온순하게 풀을 받아 먹는 양들과는 달리 대들며 풀이 든 바구니를 나꿔채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양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다 성품이 달라 보였고, 그중에는 염소의 눈을 가진 포악한 녀석들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온유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양 한마리와 눈빛이 마주쳤고, 우리는 마치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교류를 나누면서 애정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때 저는 우리 각자가 주님과 1:1 의 얼굴로 서로 대면하게 되면서 주님과 눈을 마주보게 되는 때가 곧 오게 됨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은 그럴 수 있는 상태로 예비되셨는지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얼굴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 18)

 

b.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을 나누기 원하심이었고, 에덴동산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관계는 그만 깨어졌고 파괴되었습니다. 따라서 죄가 들어오기전의 하와의 상태로 회복됨은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결합 할 때 사랑없이 학벌, 직업, 집안 등등 조건만 따져서 혼인한다면 결국 그 결혼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회개와 거룩함은 기본조건이며, 그 위에 사랑의 교제를 통해 깊은 사랑의 관계속으로 들어 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날이었던 5월 1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춘천을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공지천유원지로 부터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까지 이어지는 긴긴 자전거 길을 걸었는데, 호반의 물가에서 자전거 길의 둑 위까지 3-4 미터의 경사진 기슭에 흰색, 붉은색, 핑크색 등의 온갖 철쭉꽃들이 뒤덮혀 장장 2킬로 이상 길게 이어진 꽃밭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동안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곤 했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의 절경이었습니다. 결국 주님이 감동을 주어 전혀 예기치 못한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저의 다큐작품들을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꽃을 유난히 좋아해, 꽃의 장면을 많이 삽입하곤 합니다. 주님도 저의 취향을 아시고 그 절경을 감상하게 인도하신 것이었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c. 하나님의 회복사역이 완성되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택한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님을 영접해야만 주님이 오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신랑이 하는 일과 뜻을 잘 알아 함께 이루어 드리기 위해 내조하고 보필해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는 주님이 이루시는 회복사역 특히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내조 보필해 드릴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 현 상황에서 최소한 중보기도라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룻과 보아스의 스토리라고 할 때 단지 그들의 결합 때문만이 아니고, 그들이 혼인하게 됨으로써 기업을 무르게 되고, 룻이 나오미의 은혜를 갚아 모두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스토리이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상징인 에스더도 <네가 왕후의 위를 받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닐지 누가 아느냐> 라는 모르드개의 호소를 들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믿음으로 나아가 멸절의 위기에 놓였던 택한백성을 구해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은 택한백성이 수천년의 그 긴긴 세월동안 말씀을 결코 변개하지 않고 충실히 보존해 주었기 때문이며, 유대인 크리스찬들이 복음을 이방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실 은혜를 갚는 차원에 앞서 빚을 갚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남은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중보기도를 쌓음으로써 신랑되시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휴거를 사모하는 교회의 종들 가운데, 올라가서 신분이 신부나 들러리로 갈라지게 되더라도 일단은 휴거되어 올라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로서는 이런 가르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말씀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저 자신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가지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는, 자신이 감히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어 미리 포기해 버리는 성도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주님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며 신부로 택함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다고 여겨 미리 포기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도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쫒지 아니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듯이, 방주안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자격이 없다고 발길로 뻥 차서 방주 밖으로 내어쫒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철저히 회개하여 성결한 상태로 예비되고, 세상과 자기에 속한 모든 것을 다 버리며 주님께 올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방주이심으로 그것이 방주안으로 들어간 상태인 것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 도자기의 예를 들었지만, 도자기에는 청자, 백자, 분청사기, 골화자기 등등 종류와 격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흠만 없으면 버려지지 않고 나름대로 다 귀히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핵심은 철저한 회개한 성결함으로 예비되어 방주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일단 방주안으로 들어가면 들리워지는 것이고, 올라가서 신분이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신부가 되면 더 좋겠지만, 천국에서는 영광이 다르더라도 모두가 다 만족하고 기쁨과 행복으로 넘치며 결코 시기나 질투나 경쟁심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성숙한 신부로 예비되되, 자격이 부족하다고 여겨 미리 포기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부족하더라도 성결한 상태로 예비되어 일단 방주안으로 들어가시도록 권유합니다. 얼마의 기간이 남아 있을지 우리 인간은 알 수 없지만, 철저히 회개하고 성결한 상태로 예비되어 방주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짧은시간은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절대 지체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잘 예비되시어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추수절기의 원리와 오순절 VS 나팔절

http://cafe.daum.net/aspire7/9zAJ/7536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euibhong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