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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메모노트 ♡

[스크랩] 무엇을 검색하다 어떤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보니....

by 샬롬♡예루살렘 2018. 12. 11.

무엇을 검색하다 어떤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보니....
간증 글이었습니다.

어제는 참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녘먹고 조금있다 8시쯤 잠자리에 들어 깨어보니 01시였습니다.
5시간 한번도 깨지 않고 내쳐 잘 잤습니다.

그런데 잠자리 들기 전에...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무슨 한이 그렇게도 많고 깊은지
오랜 세월 그랬든 것처럼....
서럽게 울든 아기가 다 울고 나서도  흐느끼듯
그렇게 외마디 한숨이 흘러나왔든 것을 기억합니다.

동영상을 한편 보고도
날이 밝기까지는 시간도 참 많아
간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간증은 크게 세 부분인데 다 깊은 아멘으로 전달되어왔습니다.
그 사랑을 만난 과정도 아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환경에서 여러 모양, 여러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일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에서 볼수 없는 사랑이요
세상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세상에서는 이해할수 없는...

너무 깨끗하고
너무 낮아지고
너무 깊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슬픈 사랑이기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으로
어찌 이를 이해하거나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온통 자아와 이기와 교만으로 가득차
어두움의 두터운 커튼이 내려진 깊은 죽음에 빠져있는 영혼에 
한 줄기 사랑의 가는 빛이 비춰진 적이  없는데...

한줄기 가는 사랑의 빛이 영혼에 비추일때 
감히 소리내어 통곡도 용서를 빌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놀라 심장이 멈추어진 적도 없는데...

내 영혼이
내 육체가 
숨쉴 힘도 없도록 기진해 
그런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본 적도 없는데....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벌거벗겨지고 피투성이 되어 조롱받고 짓밟혔든 하나님...

그렇게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신 하나님...

그렇게 이루어주신 은혜
그 사랑을 어찌 볼수 있겠는가....
그 사랑을 어찌 만날 수 있겠는가....
그 사랑을 어찌 받을 수 있겠는가...

얼마나 낮아지고
얼마나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미워해야만 
그 사랑을 볼수 있단 말인가...

어제
요즈음 거듭난 두분과 전화를 나누었다.
회개 - 죽음 - 거듭남의 과정을 생각하며 
통화가 끝난후 가슴 깊은 속에서 흐느끼듯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길을 찾아오는 자가 너무나 적기 때문입니다.
회개함으로 깨어지고 비워지고 낮아진 곳에 찾아오시는 주님이기에...

잔을 마심으로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잔을 마심으로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아멘


 

2014. 10. 22   03:26

청천홍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은수

 

 

할렐루야.

 

 

 

카페에서 활동을 마무리 하는 마음으로 특별하지 않지만 간증 글을 올려봅니다.

 

 

(예전에 제 간증 글이 없는 것으로 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어떤 분이

 

표한 것을 보았는데요.  그에 답하여 올리는 글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카페를 탈퇴하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주님 안에서 반드시 올려야 하는

 

글은 앞으로도 올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활동으로는 카페

 

활동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제 간증은 모든 분들의 간증이 주님과의 만남이기에 특별한 것처럼

 

그런 특별함은 저 개인에게 있으나 동시에 다른 분들의 간증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특별하지 않은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  간증으로서

 

그 어떤 영광도, 찬양이나 칭송도 제게 돌아오지 않고 오로지

 

크나큰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사랑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나의 주

 

성삼위 거룩하시고 높으신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제가 체험적으로 주님을 강하게 만났을 때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주님의 성품에 대해 한번에 한 부분씩 지극히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거룩하신 성령님을 증거된 말씀을 통해 첫번째 강하게 경험했던 것 같고요.

 

 

겸손하신 예수님을 두번째 강한 체험으로 만날 수 있도록 크신 은혜를

 

허락해 주신 적이 있었고

 

 

사랑의 하나님을 세번째 체험적인 만남으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너무나

 

자비하신 긍휼을 너무나 죄인인 저에게 허락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죄와 거하시지 않는 거룩하신 성령하나님을 체험했을 때는, 지금에서야

 

이렇게 쓰지만 그 당시에는 그 체험이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인 것도 몰랐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때, 다니던 교회에서 송명희 시인을

 

초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학생부 성가대로 저녁 예배 찬양을

 

성가대 일원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고 송명희 시인께서 휠체어를 타고

 

강대상 있는 곳에서 육신의 장애 때문에 굉장히 힘겹게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 때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었던 건, 송명의 시인의 얼굴이 너무나 너무나

 

어려보인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동안 수준의 20년 정도를 뛰어넘는 동안

 

때문에 많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 (송 시인님의 세상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마음 때문에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송명희 시인께서 자신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나 일상에서 말하는 것조차

 

너무나 힘든 신체 여건이지만,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있냐고 말씀을 전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말씀이 얼마나 제 심령을 찌르고 양심을 찌르던지, 말씀이 살아서 저의

 

심령을 그렇게나 강하게 찔렀던 기억은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 말씀으로서 제 자신이 얼마나 주님 앞에 부족한 자인가가

 

너무나 깊게 다가오고 찔려서 말씀을 듣는 중에 제 의지로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울음이 북받치고 쏟아지는데, 마치 강한 수압으로

 

흐르는 수도관이 터지면 그 물을 웬만해선 막기 힘들게 너무나 세게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 울 수 있는 수압의 한계를 넘어서 울음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기억이

 

납니다.

 

 

 

그 땐 어릴 때였고 그런 경험을 처음 했을 때였는데요.  그 때는 성령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었고 교회는 다녔으나 아무 것도 모르고 다녔던 시절이어서 그 경험

 

이 후로도 계속 교회는 다녔지만 주님과 일대일의 사귐의 교제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후 주님과의 실제적인 사귐을 열망하게 되고 공허한 내 마음과 거짓된

 

신앙생활을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나이를 먹으면서 강하게 들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방황하고 주님과의 사귐없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시 주님을 강하게 만났던 건 1990년대 말미였는데요

 

 

 

 

1990년대 말미에 주님을 만났던 경험은 좀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앞 뒤 정황에 대한 설명은 제가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고 그 당시 상황은

 

제가 변기 앉는 곳에 입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쩔 수 없이 너무나 힘들게 그렇게 했을 때 주님의 발에 입맞추는 영광이

 

제게 허락되었던 경험이었는데요. 

 

 

 

제가, 변기 - 세상에서 가장 더럽다고 할 수 있고 오물을 받는 그릇으로서

 

더러운 냄새나고 천대받고 하찮고, 아무 아름다움이나 흠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인 - 변기에 입맞춤으로서 주님께서 계신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 주님이 계신 곳은 우리가 미워하는 곳/사람, 

 

천대하는 곳/사람, 아름다움이라곤 없고 멸시받는 곳/사람, 냄새나고 더럽고 추해서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 꺼려하는 그런 곳/사람 - 이런 세상의 낮고 낮은 장소,

 

이런 세상의 낮고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너무나 겸손하고

 

겸손하신 주님이심을 그 때 제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3년 정도를 여러 면에서 큰 고통을 겪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도 여러 사고 때문에 고통이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어떤 확신이 없던 때여서 방황하고 있었고

 

영적으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는 제 자신이 아니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후 2000년도에, 제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고 결국 탈진하여 제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때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 방황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저를 다시 찾아와

 

주셨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와 주신 주님은, 숨막히는 사랑의 주님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 = 사랑 - 이 어구, 이 말씀을, 어릴 때부터

 

교회를 수년간 다녔던 저로서는 많이 들어왔던 말씀이었지만 그 때까지는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그냥 관념이고 흔히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때였는데요.

 

 

 

사랑의 하나님을 제가 만나기 전까지 제 육체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육체적 고통은 다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병원에도 몇 번 입원하기도

 

했었고, 그렇기에 성경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이,

 

 

[딤후 4:6]  관제와(a drink offering)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위 표현으로 사도 바울 선생님이 주님 안에서 자신의 육체로 받았던 주님과 함께 한

 

고난은, 마치 고체가 액체가 되기까지는 사실 그 고체를 엄청나게 두들겨 패는 것으로

 

그 고체가 짓이겨지고 진물이 나와 다 터지고 거기에 더 얻어 맞고 맞고 맞고 맞으면

 

그 고체가 이제 형체가 없어져서 진액이 되고, 더 얻어 맞으면 액체가 되는 현상으로서

 

사도 바울 선생님이 자신을 관제/drink offering 로 표현하기까지 주님과 함께

 

어떤 정도의 고난과 핍박을 받았을 것인지, 제 자신의 육체의 깨어짐으로서

 

아주 아주 조금이나마 제가 그 말씀의 뜻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자신의 고집스러움과 제 자신의 자아의 높음과 변화되지 못한

 

죄인의 못나고 못난 모습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까지 많은 육체의

 

고통으로 꺾어지고 부서져야 했던 것이라면,

 

 

 

사도바울 선생님은 귀하고 높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복음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주님과 함께 나눠지신 결과로서 엄청난 고난을 겪으셨음이

 

제가 겪은 고통과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

 

 

 

제가 그렇게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깨어지고 부서지고 꺽어져야 할 것들이 많았고 컸다는 증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너무나 부족하고 못나고 죄인 중에 죄인이었던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김으로 찾아와 주신 주님께 참으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실제로 제가 숨을 쉴 수 없고 숨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숨막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제가 그때껏, 그토록 세상에서, 혹은 교회에서, 아니면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고 주님을 정말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나마 보고자 했고, 알고 싶어했고 무의식적으로나마

 

찾아 헤매었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제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할 수 있고

 

쏟아부을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이제는 제가 탈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그 때에 마침내 주님께서 제게 와 주셨을 때 주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하나님이 나쁜 하나님이시고 언제나 화내는 하나님이시고,

 

언제나 정죄하는 하나님이시고 언제나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오해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그 자체부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심이 증명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점과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숨도 쉴 수 없도록 큰 하나님의 사랑을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이 알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인간이 어떤 관념의 정립조차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우리가 보고, 듣고, 접하고, 경험하고 그런 것들로 지식을 쌓고

 

무언가에 대한 작고 희미한 개념이나마 정립하게 되는데요.  제가 만났던 하나님의

 

사랑은 말그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너무나 컸습니다.

 

그 사랑이요.  인간의 생각의 범위라는 것이 있는데요.  그 밖에 있는, 인간이

 

어떤 관념조차 갖기에 벅찬, 불가능한, 그렇게 큰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사고의 범위 밖에 있는 큰 사랑을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사고가 가능한 경계 바깥에 존재하는, 우리가 생전 경험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그런, 실제로 대면하면 숨을 쉴 수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너무너무 큽니다.  그 사랑이요.. ^^ 

 

 

 

 

저도 그렇고 모든 분들이 주님의 이 사랑을 만나고, 그 안에  거하고

 

이 사랑을 매일 순간순간 호흡함으로 각자의 끝날까지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너무나 거룩하시고, 지극히 겸손하시고, 광대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하며,

 

 

 

 

체험을 허락해 주시고 간증을 부족하나마 나눌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내 인생의 멋진 저자,

 

 

 

나의 주 성삼위 거룩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 

 

 

 

 

 

<이미지 출처: https://versaday.com/Months/08/0806.aspx>

  

이사야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송명희 시인의 간증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백합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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