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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

[스크랩] [자료]이스라엘 결혼 풍습

by 샬롬♡예루살렘 2014. 7. 4.

이스라엘 결혼 풍습     

 

후파  크루바(결혼계약서) 

 

유태인들은 아내를 갖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도 없으며 선행도 쌓이지 않는다고 믿으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만일 딸이 이방인과 결혼할 경우 그 딸의 장례식을 치루고 딸이 죽은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현대의 유태인들은 이스라엘 랍비회의 결정에 따라 1950년에 공포된 혼인법에 의하여 결혼을 한다. 결혼식은 반드시 랍비(robbi: '나의 선생님', '나의 주인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가 집전을 해야 인정이 된다. 

 

1. 장소  

마당이나 회관등에 사방 2미터의 붉은 융단 가장자리를 수시로 엮어 내리고 네 귀퉁이를 장대에 고정시킨다. 요즈음에는 신랑의 친구들이 장대를 붙잡기도 한다. 이것을 후파(canopy)라하는데 이 아래서 랍비가 집전한다. 성경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결혼예식을 하는 주간에 거처하는 방을 일컫는다.  

(욜 2:16)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시 19: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당시에는 아들을 낳으면 삼나무, 딸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를 베어서 후파를 받치는 장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전에는 기도숄(탈릿)을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 펼쳐서 후파로 사용하기도 했다.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 기도숄을 덮는 것은 룻기 3장 9절과 겔 16장 8절에 근거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민간에서 후파는 결혼식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2. 의상  

화려하게 치르는 결혼식도 있지만, 대체로 신랑과 신부의 의상은 검소하다. 신랑은 흰 남방과 신부는 수수한 하얀 드레스를 입는다. 후파 기둥을 잡고 있는 신랑의 친구들도 평소의 남방 차림이다.  

 

3. 예식의 절차 

약혼을 하고 일년 후 랍비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1) 결혼서약(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을 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계약서'를 준다. 히브리어로 '크투바'라고 부르는 이 결혼계약서는 여성을 위한 제도로 고대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한 것으로 만일 남편이 아내와 이혼을 하거나 아내를 내쫓으려면 결혼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던 금액을 남편이 아내에게 지불해야만 했다. 결혼할 때는 지불하지 않았지만 이혼을 하려면 큰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 이 규정. 결혼계약서는 신랑 신부가 지켜야할 의무, 주고받은 폐물의 명세가 기록되고, 신랑신부가 서명을 한다.)   

크투바 맨 위에는 왕관이 그려져 있는데 거기에는 '현숙한 여인은 남편의 왕관'이라고 히브리어로 쓰여 있다. 양쪽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그림이 있고 신랑신부 아래로 12개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크투바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티브는 예루살렘이다. 중앙에 산이 둘러싼 예루살렘의 전경(황금의 사원과 도시)이 그려져 있고 그림 위에는 시편의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영원히 너를 지키시리로다"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크투바에는 당시 이탈리아의 예술적인 성향이 그대로 들어있다.  

 

2) 서명: 친척이 아닌 두 사람이 증인으로 서명을 한다. 

3) 신랑신부가 술잔을 교배한다. 

4) 랍비가 결혼 서약서에 다시 서명한다. 

5) 신랑이 신부의 술잔을 밟아 깨뜨린다. 

6) 신랑과 친척, 친지들이 신부의 주위를 일곱 번 돈다.(옛날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돌고 점령했듯이 신부의 처녀성을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 

7) 15분간의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열린다.  

 

 

 

** 크투바(결혼계약서)  ** 

 

어느 나라나 결혼에 따른 고유한 풍습이 있는 법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을 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계약서'를 준다. 히브리어로 '크투바'라고 부르는 이 결혼계약서는 구약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구약성경에는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이혼증서('세페르 크리툿' 신24:1, 사50:1, 렘3:8)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유대교는 기독교와 달리 이혼이 합법적이다. 이혼증서는 구약시대에도 존재했던 것 같고 결혼계약서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주전 5세기에 발견된다.  

가장 오래된 결혼계약서는 엘레판틴에서 발견되었다. 엘레판틴은 이집트에 있는 도시로 남유다가 주전 586년에 멸망한 이후로 많은 유대인들은 이집트에 내려와 정착하게 되었다.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는 이집트에서 만들어졌고, 이집트의 건조한 사막기후 덕분에 파피루스는 쉽게 부패하지 않고 오래 보존되어 내려올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도시 엘레판틴에서 발견된 주전 5세기의 파피루스에는 공문서와 같은 기록뿐만 아니라 결혼계약서도 있다. 주후 1세기와 2세기에 만들어진 결혼계약서를 보면 신약시대에 결혼계약서는 이미 유대인의 결혼관습으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결혼을 하려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하여 신랑이 지참금을 내야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결혼하기도 어려웠다. 주전 1세기 랍비 시몬 벤 쉐타흐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신랑이 지불해야할 금액을 결혼계약서에 기록하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했다. 실제로는 돈을 지불하지 않지만 그렇게 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유대인의 결혼계약서는 여성을 위한 제도이다. 고대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는 존중받지 못했다. 고대의 어느 사회나 남편은 아내를 쉽게 내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남편이 아내와 이혼을 하거나 아내를 내쫓으려면 결혼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던 금액을 남편이 아내에게 지불해야만 했다. 결혼할 때는 지불하지 않았지만 이혼을 하려면 큰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 이 규정은 힘이 없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주후 10세기 랍비 게르솜은 아내의 동의가 없으면 남편은 일방적인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결혼계약서는 언제 어디서 신랑 아무개와 신부아무개가 결혼을 한다는 글로 시작된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지켜야할 의무, 주고받은 폐물의 명세가 기록되고, 신랑 신부와 증인들이 서명을 한다.  

중세 유대인들의 결혼계약서는 성경구절과 함께 결혼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서 민간예술로 발전되었다. 유럽에서도 특히 이탈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아름다운 결혼계약서를 만들었다. 신랑과 신부의 이름이 성경에 나오는 이름일 경우에는 그들의 이름이 언급된 성경구절을 결혼계약서의 그림과 함께 장식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잠 18:22)같은 결혼에 관계된 구절들은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디아스포라(이스라엘밖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방랑생활을 했지만 예루살렘을 잊지 않았다. 신랑은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 지로다"(시 137:5)라는 성경말씀을 암송하면서 컵을 밟아 깨뜨린다. 예루살렘은 결혼계약서의 그림에 빈번히 사용되는 상징이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 125:2)라는 구절과 함께 산에 둘러싸인 예루살렘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결혼계약서는 보통 달력 크기만 하며 전에는 양피지를 사용했지만 요즈음에는 종이를 사용한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보다도 결혼을 축복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종종 결혼에 비유된다. 유대인들은 결혼의 지속을 위하여 결혼계약서라는 관습을 지켜왔다. 가정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란 유대인 결혼계약서

◀ 전형적인 이탈리아 색체를 띠고 있다. 주변그림은 성경의 사건을 주제로 하고있다. 

(1856년 이란 유대인 결혼계약서)

재료 : 양피지 

 

 

 

 

 

 

 

 

회교국가인 이란에서는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 이란의 유대인도 이런 영향을 받아 사람의 모습은 사용하지 않고 식물과 기하학적인 모양만을 사용한다.

재 료 : 종 이

종이로 만들어진 크루바

 

 

 

 

 

 

 

** 후파(canopy) ** 

 

유대인의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시설이 후파이다. 신랑과 신부는 후파 밑에서 결혼예식을 거행한다. 후파는 닫집 또는 차일과 같은 것으로 4개의 장대 기둥으로 떠 받쳐지며, 요즈음에는 신랑의 친구들이 장대를 붙잡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결혼예식을 하는 주간에 거처하는 방을 일컫는다  

(욜 2:16)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시 19: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 

탈무드 시대에는 후파가 결혼예식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아들을 낳으면 삼나무, 딸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를 베어서 후파를 받치는 장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전에는 기도숄(탈릿)을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 펼쳐서 후파로 사용하기도 했다.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 기도숄을 덮는 것은 룻기 3장 9절과 겔 16장 8절에 근거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신랑과 신부는 후파 아래에서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혼기를 앞둔 딸들을 유대인 전통에 따라 결혼시키려는 유대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 에서 후파와 관련된 대목을 살펴보자.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정 러시아의 작은 마을 아나테브카가 배경이다. 테브예는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는 순박한 농부이다. 그는 딸들이 전통에 따라 중매장이를 통해 좋은 신랑감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딸들은 전통보다는 사랑을 원한다. 첫딸 짜이텔은 마을의 가난한 재봉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둘째 딸 호델은 혁명에 가담한 애인을 사랑하고 결국은 그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셋째 딸 하바는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되는 기독교인을 사랑하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강행한다. 유대인은 마을을 떠나라는 명령에 따라 테브예 가족이 고향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유대인의 전통과 가족사랑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유대인을 이해하는데 매우 좋은 영화이다.  

아버지 테브예는 애인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둘째 달 호델을 배웅하러 기차역에 온다. 그리고 딸에게 당부를 한다. "어디서 결혼을 하더라도 꼭 후파 아래에서 결혼을 하거라"  

 

◀모리츠 오펜하임  

(Moritz Oppenheim)의 '유대인결혼' (1861년, 독일) 

신랑과 신부는 탈릿(기도숄)을 함께 쓰고 있고,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다는 상징으로 허리에는 하나의 벨트를 묶었다. 신랑 신부 앞에 서있는 사람은 랍비. 회당 마당에서 결혼예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명랑한 하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결혼식은 밤에 거행한다 ▶

화려하게 치르는 결혼식도 있지만 대체로 신랑신부의 의상은 검소하다.신랑은 흰 남방에 신부는 수수한 하얀 드레스를 입었다. 후파 기둥을 잡고 있는 신랑의 친구들도 평소의 남방 차림이다

 

 

 

◀개혁파 종교인의 결혼식 후파가 예쁜 레이스와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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