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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 ♡

[스크랩] 나팔절 직전에라도 신부가 취해질 수 있는 또다른 깨달음들 - 홍의봉선교사

by 샬롬♡예루살렘 2015. 9. 10.


1) 초림 때 오신 예수님이 유월절날 십자가에서 유월절의 의미를 성취하셨음은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입니다. 즉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 할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죽음을 면한 모형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통해 정확히 성취되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유월절만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가을절기로 지켜지는 속죄절의 의미도 미리 땡겨서 함께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을에 지켜지게 될 속죄절은 더 이상 성취 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씨름을 하던 저는, 결국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는 더 이상 속죄절이 다시 성취 될 필요가 없고, 속죄절은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을 위한 절기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누누히 설명 드렸듯이, 나팔절과 속죄절은 10일간의 <Days of Awe>(경외의 날들)이라는 회개의 기간으로 서로 묶여 있고 분리 될 수 없으며, 따라서 나팔절과 속죄절은 예수님의 지상재림 때 이스라엘을 통해 성취 될 절기들이지, 교회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물론 속죄절 다음으로 지켜지는 장막절(초막절)은 영원히 용서 받은 이스라엘과 구원 받은 교회가 다 하나가 되어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절기임으로, 장막절은 교회와 연관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난번 글에서 썼듯이, 교회시대는 나팔절 직전에 끝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며, 교회시대가 끝나면서 그때까지 생명의 열매로 완성된 신부는 취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럼 예수님께서 유월절날 유월절의 의미를 성취하면서 가을절기인 속죄절까지 땡겨서 함께 성취하셨음을 간략하게 살펴보기 원합니다. 


a. 속죄절날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피뿌림의 의식외에 백성의 저주를 Scapegoat 즉 Azazel(아사셀)의 염소에게 전가시켜 광야로 멀리 떠나 보내었던 것입니다. 가시와 나무에 달림은 저주를 의미하는 바,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셨고, 나무에 달리시어 인류의 모든 저주를 한 몸에 다 받으시고 제거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 13)


b. 속죄절날 대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좌에 뿌림으로써 백성의 죄를 사함 받곤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셨을 때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찢어졌고,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보혈을 천상의 제단에 뿌림으로써 이를 성취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피를 속죄좌에 뿌리기 까지는 아무도 그를 만져서는 안되었는데,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자신을 만지지 말도록 하셨는데, 그후 도마에게는 만지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 사이에 천상의 제단에 자신의 피를 뿌리고 내려오셨기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언약궤가 예레미야 동굴안에 감추어져 있고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보혈이 지진으로 갈라진 바위틈으로 흘러내려 지상의 속죄좌에도 뿌려졌다는 Ron Wyatt 의 주장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시고도 남음이 있으심을 잘 알기에 진실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c.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살랐는데, 예수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1-12절 참조)


이상의 예만 보아도 예수님이 유월절날 속죄절의 의미까지 미리 땡겨서 성취하셨음은 부정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는 속죄절이 다시 성취 될 필요가 없고, 속죄절은 나팔절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회개가  10일후의 속죄절날 영원히 용서받게 되는 절기로서, 나팔절과 속죄절은 서로 묶여 있고,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절기들이며, 주님의 지상재림 때 이스라엘을 통해 성취 될 절기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는 나팔절 직전에 끝난다고 보아야 하고, 동시에 추수도 함께 있게 된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월삭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없이 전해드린 바 있는데, 골로새서 2장 16-17절에 의거, 월삭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그 몸은 그리스도의 것임으로, 이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월삭을 Veiled Moon 이라고 하여 달이 점점 가늘어져 없어지는 현상을 신부의 얼굴에 베일이 내려져 완전히 가리워지는 상태로 보는 것이며, 달이 실낱 같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 현상을 베일이 들어 올려지는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차례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두 관측인이 성전의 지붕 위에 올라가 처음 실낱 같은 달의 나타남을 육안으로 보게되면 이를 알려서 백성으로 하여금 새달을 맞게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우리나라의 음력처럼 달이 없는 날 부터 초하루로 치지않고, 실낱 같은 초승달이 처음 나타나는 날 부터 초하루로 치는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4장 63-65절에 의하면, 리브가(신부)가 엘리에셀(성령님)과 함께 돌아오던 중 멀리 들판(공중)에서 배회하는 이삭(주님)을 보고 약대에서 내려 면박(베일)을 취해 얼굴을 가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갈 때에는 베일이 내려진 상태로 가야하고, 신랑되신 주님이 베일을 올려주게 된다고 할 때, 초승달이 나타나기 전에 신부가 취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일이 벗겨짐으로써 주님의 얼굴을 직접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베일)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

     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 18)


4) 모세가 두번째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의 하나님께로 올라간 날이 Elul월의 초하루였고 40일 후 내려온 날이 숙죄절날임을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두번째 돌판은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에 의해 영으로 완성되는 의미를 갖고 있음으로,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으로 승리하는 교회에게 먼저 해당되고, 7년 후에 이스라엘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돌판을 가지고 내려온 날이 속죄절로서, 속죄절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절기임으로, 승리하는 교회는 두번째 돌판의 40일 중 40일을 다 채우지 않고, Elul월의 마지막 날이나 마지막 날의 바로 전날 취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5) 거듭 말씀 드리지만, 이 글은 예언이 아니고, Study 에 의한 분석의 글로서, 인간은 그 누구도 앞일을 알지 못하며, 그 날과 그 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시고,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절대자이시요 완전자이신 하나님이 말씀에 나타내신 원리대로 역사하신다는 믿음으로 말씀을 잘 연구하여 깨달아 이에 대비 할 뿐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날을 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나가면 지나가는대로 또다른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인도하시는대로 계속 찾아 갈 것이지만, 일단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먼저 오는 가능성에 예비되고 있는 것이 가장 현명한 신부의 태도일 것입니다. 아무쪼록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시어 끝까지 승리하십시요.


나팔절은 천상에서 보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http://cafe.daum.net/comelordjesus/AUst/151




 

출처 : 김베드로의 외침
글쓴이 : euibho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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